크라잉넛 7집 [Flaming Nuts].
데뷔 18년이된 크라잉넛. 여전히 타오르는 불길에 대한앨범 정규앨범 (총 10곡) [플레이밍 너츠]로 우리에게 돌아 왔다!
한국 펑크의 시조, 그들의 새로운 항로 - 성기완 (3호선 버터플라이, 대중음악 평론가).
나이가 어려서 젊어 보이는 건 너무 뻔하다. 당연하기 때문이지. 늙어서 성숙해지는 것도 그저 그렇다.
그럼 나이값도 못하면 나이를 뭐하러 먹어? 나이 먹어 성숙해지면서도 젊음을 유지하는 것, 그게 자고로 드문 일이요 멋지다 아니할 수 없는 일이다.
한국에서 최고로 신명나는 밴드, 한국 펑크의 원조, 크라잉 넛이 새 앨범을 냈다.
벌써 7집인가? 이 정도면 지칠 때도 됐는데. 펑크가 지겨울 때도 됐는데. 웬걸. 정반대다.
그들은 이번 앨범에서 한마디로 누구보다도 신선하고 젊은 음악을 선보인다.
그러면서도 그 젊음은 어린애들이 흉내내기 힘든 넓이와 진폭을 지니고 있다.
자 그럼 구체적으로 크라잉 넛의 항해기를 따라가 볼까?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다양한 장르의 과감한 융합이다.
타이틀 곡 "Give Me The Money"는 그 동안의 크라잉 넛 음악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던 힙합적인 비트와 랩적인 멜로디를 선보인다.
드러머 이상혁의 장난스러운 듯한, 그러나 바로 지금! Right Now의 세태를 날카롭게 꼬집는 블랙 유머가 노래를 이끈다. 거기에 신기하게도 우크렐레 연주가 뒤섞인다.
불꽃 튀기는 단순 리프의 펑크적 코러스에서 반전이 이루어지고 본론이 나온다.
'난 돈이 필요해!' 비꼬고 놀려대지만 본론에 이르러서는 단도직입적이다.
이 힘이 힙합과 우크렐레의 소박함을 뒤섞는 과감한 여유 속에서 항해의 흥을 돋운다.
이들은 처음에는 90년대 중반에 20대가 된 "말달리자" 세대의 희망과 어려움을 집중적으로 노래하는 세대 중심적 아이덴티티를 선보였다.
그러나 세월이 가면서 그 아이덴티티는 자라고, 진화한다. 다양성과 집중력을 공존시키는 균형감각과 셀프 프로듀싱 능력을 키워왔다.
회심의 역작이라 할 이번 앨범에서는 멤버 각자의 음악적 성향에 문을 열어놓고 자유롭게 그 개성들이 크라잉 넛이라는 해적선 위에서 뛰어놀도록 놔두는 개방적 태도를 수용한다.
언제나 일상성을 놓치지 않으면서 펑크의 토양에 서정성과 성장소설적 깨달음을 자라게 하여 크라잉 넛의 활력에 깊이를 부여하는 한경록, 사이키델릭한 감수성과 우울함 마저 크라잉 넛의 드라이브감과 뒤섞는 공간계 기타리스트 이상면, 의외로 쓰래쉬메탈적 과장과 절규, 과도함과 처절함을 착한 어둠과 결합시키는 김인수, 촌철살인의 멜로디와 명확한 메시지를 통해 평범한 기대감을 뒤집는 반전의 유머감각을 소유한 이상혁, 이 모든 엄청난 자기과시적, 노출증적 개성들을 다 감당하고 감싸 안으면서 거기에 튼튼한 중심을 부여하는 박윤식의 목소리. 이 모든 것이 공존하면서 흩어지지 않고 힘을 발휘한다.
어쿠스틱함, 민속음악적 유쾌함, 펑크적 에너지, 뽕짝의 슬픔, 전자음악적 실험, 그것들이 다 들어 있다.
그래서 크라잉 넛의 항해는 흥겹고, 놀랍다.
또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은 작곡 작사에서 녹음, 심지어 믹싱까지 모든 것을 스스로 책임지고 해결하려는 Diy 정신이다.
서교동 작업실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아마추어 같이 쪼잔하지 않다.
음향적 스탠다드에 다다른 그 해결능력은 이들에게 인디 고유의 '자발성'이 여전히 살이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취생몽사. 취중진담. 기우뚱 쓰러질 듯, 비틀비틀 왔다갔다, 때로는 전속력으로 내달리고, 그러면서 긋는 획들은 벗어난 듯 격에 맞고 추한 듯 아름답다.
유통기간이 보이지 않는 이 신선함과 숙성의 비결은 뭔가? 딱 잘라서 말할 수 있다.
'모험'이다. 모험을 즐기기 때문에 이들은 늙지 않는다.
홍대 근처의 술집에서, 한강의 자전거 길에서, 작업실에서, 저 먼 텍사스 오스틴의 공연장에서 크라잉 넛 멤버들은 신출귀몰하면서 아직도 껄껄껄 파티를 일삼고 어른처럼 사랑하고 아이처럼 옷을 벗는다.
이번 앨범은 넘치는 활력과 다양한 실험으로 가득찬 악동 해적 밴드 크라잉 넛의 음악적 여행기다.
그들은 아직도 바다에 있다.
항해중이다.
아직 그들에게 바다는 넓다. 푸르른 바다처럼 그들의 음악은 시원하다.